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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中

김지훈 오희준 정인성




1.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은 많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사람 중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 있고. 언제나, 하루 종일 지루하게 책상에 앉아 몇 시간동안 수업을 듣고 야자까지 하고 난 뒤 집에 오면 항상 12시 쯤이 되었다. 야자가 끝나면 항상 집 언저리 놀이터에서 농땡이를 피며 어쩌면 저 집을 나갈 수가 있을까. 생각을 하고 집에 들어간 터라 그 즈음보다는 더 일찍 학교에서 떠났겠지만.

오랜만에, 약 3개월만에 간 학교는 지긋지긋하게도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뒷문을 막고서 우리 반 누군가를 찾으러 온 선배들, 거울 앞에 모여서 화장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여자애들, 교과서를 보면서 공부를 하는 애들까지. 안 나온 사이 그새 자리를 바꾼 모양인지 내 옆에는 저번에 보았던 마지막 짝꿍이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애가 앉아있었다. 워낙 학교를 안 나온터라 같은 반 애들 이름과 얼굴도 못 외운게 이유였다. 그러나 얼굴도 볼 틈 없이 선생님한테 가서 그동안 빠진 수업일수 등에 대한 나머지 처리를 해야 하는 게 생각나 가방만 놓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1개월 동안 나왔던, 이 학교에 대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추억이랄 것도 없지만 유일하게 머리를 탁 치고 떠오르는 기억 하나. 우리가 떠나고 다시 재회할 때는, 다시 여기서 만나는 거야.




2.

“아 그래, 여기 앉아.”

교무실에 계신 담임 선생님도 변하신 게 없었다. 얼굴, 성격, 표정, 의자에 앉아계시는 모습까지도.

“음, 그래서 지금은 괜찮으니까 학교를 나오겠다고?”

“네. 집도 있고 돈도 충분히 생기고...”

“뭐, 딱히 문제는 없는데. 밀린 수업일수 처리는 어떻게 할래? 빠진 게 몇 주가 아니다 보니까 좀 어렵긴 한데”

“보충수업으로 다 때울... 수는 있나요?”

“일단 내가 한 달 정도는 채워줄 수 있긴 한데, 나머지는 보충이나 야자시간으로 어떻게든 채워야 돼.”

“할 수 있겠죠 뭐... 그럼 저랑 학업에 대해서 할 이야기는 끝난 거예요?"

“응, 이제 교실 올라가서 수업 준비해.”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교실에 가기 위해 교무실을 나왔다. 어이없게도 계단을 오르는 게 유난히 힘들었다. 예전에는 이 계단 뛰어다니면서 올라갔는데. 그동안에 거리를 방황하며 많이 걷고 뛰고 했지만, 역시 계단과는 달랐다. 그러다 익숙한 실루엣과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내 1개월간의 기억 중, 가장 많은 기억 지분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사람, 그 기억이 곧 나에게 말을 걸었다. 노란색 명찰에 쓰여있는, ‘정인성’이란 이름이 너무 눈에 띄었다.

“... 오희준?”

“... 오랜만이에요, 형. 잘 지냈어요?”

“안부를 물을 건 네가 아니라 나 같은데.”

“전 잘 지냈죠. 뭐..”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타이밍이 너무나도 뭣 같아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오려던 순간 정인성이 말을 꺼내고 대답할 새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점심시간에 2학년 7반으로 와.”

그 말이 계속 떠올라서 수업을 못 할 지경이었다.




3.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 뒷문을 열고 뛰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길래, 뭔 이야기를 듣고 싶었길래 나를 불렀는지. 그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한 만큼, 내가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형, 허억... 왜 오라 했어요?”

“헐. 뛰어왔어? 나 보고 싶어서?”

“아, 진짜. 나 가기 전에 빨리 말해요.”

“ㅋㅋㅋ 알았어 알았어 따라와”

따라간 운동장에는 추적추적 소나기가 내렸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왔던 그날에도 오늘처럼 비가 왔었는데. 또다시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왈칵 눈물이 날 뻔한 것을 참았다.

“왜 불렀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어떻게 타이밍이 이렇게 절묘할 수가 있죠... 참.”

점심시간 동안 매점에서 산 빵을 먹으며, 그냥, 그렇게 있었다.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냥 이렇게 영원히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지만, 타이밍은 언제나 뭣 같았다,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종이 쳤기 때문에.


“어, 형 저 가볼ㄱ.”

그 말을 막은 건 정인성이었다, 그냥 막은 것도 아니고.

“가지 마.”

키스를 하면서 입을 막으면 나보고 어쩌자는 거야.




4.

겨우 교실에 도착했다. 창밖에서 보이는 빗방울은 굵어만 간 채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그날 수업들을 전혀 듣지 않았다. 아니, 못 들었다. 수업에 집중하려 하면 자꾸 아까 정인성이 했던 그 말과 그 행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생각했다. 수업을 끝내는 종이 울리고, 나는 공부, 정확히 말하면 보충을 위해 교과서와 공책을 폈다. 종이를 넘기는 감촉마저 오랜만에 생생하게 느껴졌다.

당연할 것 같겠지만 수업을 못 들었는데, 보충에 집중을 할 리가 없었다. 그냥 있기는 심심하니까 김지훈한테 카톡이나 해볼까. 아, 저번에 한 마지막 말과의 여백 동안에 형이랑 나는 말을 텄다, 물론 말만 튼게 아니라 몸도 섞었고. 그냥 다 공유한 사이가 되었다.


> 형

> 뭐 해?

< 그냥 퇴근하고 와서 집에 있지.

< 근데 지금 야자 시간 아니야? 폰 넣고 책 펴고.

> 공부하기 싫어ㅜㅜ

< 뭔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하길래

> 형 생각❤️

< ?

< 됐고 빨리 공부나 해 나 이제 답 안 할 거야

> ㅋㅋㅋ 알았어~


폰을 서랍에 넣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눈에 들어오는 글자 따윈 없었다. 아, 졸라 망했네. 혼잣말을 내뱉었다. 짝은 이미 야자를 쨌기 때문에 옆에는 아무도 없으니, 아무도 안 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뭐 누가 들어도 상관은 없었다. 난 굳이 모범생도, 양아치도 아닌 그냥 일개 학생일 뿐이니까. 보충은 어떻게 때우지, 벌써부터 하나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보충은 혼자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러기보단, ‘혼자 하고 싶지 않았다’ 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보충을 도와줄 애를 스캔해가며 찾아봤지만, 도와줄 만한 애는 없었다. 뭐 애들을 좀 알아야 도와줄만한 애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지, 쌤한테라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끝냄과 동시에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5.

집에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어두웠다. 이 거리가 원래 이렇게 어두웠던가. 전에 살던 집의 방향과는 반대였지만ㅡ물론 지금은 이 방향으로 가면 현재 거주 중인, 김지훈의 집이 나온다ㅡ가끔 와 본 적은 있기 때문에, 이 거리의 길은 대충 알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일정 거리마다 위치해 어두운 길을 밝게 해주긴 했지만, 온통 어두운 거리 전체를 밝게 하기란 힘든 것이니까. 거리 주위에는 여러 편의점이 있었다. 잠깐 들려서 라면이나 먹고 가려고 편의점 문을 여는 순간, 정인성이 보였다.


“어, 형 안녕하세요.”

“희준이네? 이제 집 가는거야?”

“네ㅋㅋ 아 너무 피곤해요 진짜. 학교 그냥 오지 말까.”

“헐, 그럼 나 안 보겠다는 소리?”

“뭐래요ㅋㅋ 형은 똑같네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얼굴은?”

“더 못생, 아 농담이에요 농담. 더 잘생겨졌음”


그렇게 몇 십분째 라면을 다 먹은 후, 시간이 너무 늦은 듯해서 자리를 뜨려 했다.

“형, 저 가볼게요.”

“아, 시간 진짜 빨리 가네. 늦은 김에,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아, 괜찮아요. 근데 형.”

“음? 왜?”

“왜 지금은 키스 안 해줘요?”


... 푸흡.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형이 짧게 웃었다. 그리고 내 입술에 짧게 입술을 맞추고는,

“잘 가.”

라고 귀에 속삭인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핸드폰을 집었다. 위험하다. 무엇이 위험한지는 몰라도, 그냥 직감으로 이 상황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인성은 김지훈의 존재를 미약하게, 추상적으로라도 알고 있지만, 김지훈은 아직 정인성의 존재를 모른다. 그리고 그 둘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는, 어째야 할지, 무슨 선택을 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머리가 핑 도는 느낌. 

정신을 붙들고 집으로 가기 위해 편의점을 나왔다. 입술에 입술이 닿은 그 느낌과 그 행동. 분명히 김지훈과도 했던 것인데, 미묘하게 달랐다. 정확히 무슨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는 확신하지 못 하지만 달랐다. 생각만 하고 멍을 때린 채 걸어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기억을 담고 집에 들어가려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욱신거렸다. 지훈이 형하고 나 사이에 비밀이라는 것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집 가는 길이 이렇게 짧았던가.




6.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계단을 오르고 현관문 앞에 서 현관문에 설치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니 내 앞에 보이는 것은, 김지훈이 생전 처음 보는 남자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었다.


“... 형, 나 왔는데.”


“어, 희준아 왔어?”



차라리 태연하지나 말지. 당황한 척이라도 해주지.



“...”


 “아, 여기는 나 아는 형. 서울 왔는데 잘 곳이 없어서 잠깐,”


“형.”


그때 나는 이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기적이었다. 그저 아는 형이라 불리는 저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그런 나의 모습에도 별 반응 없던 김지훈은 너무나도 원망적이었다. 아무리 갑작스러워도 말은 하고 데려오지. 그 순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지, 천둥번개가 쳤다.


“나, 며칠만 집 나가.”


“어? 무슨 소리야 희준아.”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겠는데, 그냥... 며칠만, 비울게. 지금 상황에서는 뭐라 얘기도 못 할 거 같으니까.”



“... 그동안 살 데는 있긴 하고?”


“...”


“너 살 곳 없는 거 내가 아는데, 어딜 나가려고.”



분위기는 밖에 내리는 소나기만큼이나 급작스럽게 서늘해졌다.



“... 있어. 있으니까... 그냥, 며칠 후에 얘기하자.”



그 말에 김지훈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너 알아서 하라는 듯 말없이 그 망할 아는 형의 옆으로 가서 앉고서는, 어떤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렇게 나는 최소한의 짐을 가방에 쑤셔 넣은 채로 집을 나왔다.




7.

일단 무작정 나오긴 했는데. 그동안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서는 막막했다. 그때 누군가가 문득 생각이 났다. 사실 생각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조금은 난감한 부탁을 들어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결과를 알지 않겠는가.


“...형, 자요? 뭐 하나 부탁해도 되나 싶어서.”


“응? 무슨 일이야.”


“... 그게. 저 지금 편의점인데, 저 며칠만 재워주세요.”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이기적이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끼고 만난 그 행동이 뭣 같아서 벗어난 것인데, 어느샌가 나도 똑같이 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의 본심은 이기적임을, 난 그때 깨달았다. 편의점 창문 밖으로는 여전히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며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다. 난 왜 이렇게 비랑 연관된 일이 많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봤자 돌아오는 답은 적막뿐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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