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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上

김지훈 오희준 정인성

언젠가 이 비가 그치겠지만, 

얼마나 더 지나야 난 널 잊을 수 있을까.

/ 크나큰, 비 中



내가 간과하였던 사실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 너를 홀로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뒤늦은 후회는 항상 죄책감을 만들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기에도 너무 늦어버렸다. 내 앞에는 네가 쓰러져 있고, 바보같은 나는 너를 바라보며 그저 울기만 한다.



/


격하게 싸운 뒤 서로에 대한 감정이 더 식기 전에, 우리는 각자의 길로 돌아서 걸었다. 그러다 너가 급히 돌아서 뛰쳐와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그것마저 뿌리쳐 집으로 돌아왔다.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서.

이슬비처럼 방울방울 내리던 비가 대략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굵은 빗방울로 변하더니 곧이어 폭우가 쏟아졌다. 그때까진 아무런 감정조차 없었다. 그저 싸우느라 나빠진 그 기분과 감정을 식히려 아무런 생각조차 않았다. 어느덧 오후 6시가 다 되어가자, 익숙하게 TV를 켰다. 5시 뉴스의 끝자락인지 오늘의 날씨와 날씨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서울은 기록적인 폭우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며, 이 비는 곧 전국적으로 내릴 것으로 예상 ···



순간 생각이 들었다, 비가 무섭고 싫다며 비가 내리는 날이면 무섭고 싫다며 늘 나에게 안기던 너의 모습이. 기분을 식히기 위해 생각을 하지 않느라 네가 떠오르지 않았던 탓에 떠오른 네 생각과 네 모습은 마치 칼이 된 듯 나의 마음을 깊숙히 찔렀다. 제발, 그 자리에만 없길. 하며 나는 집을 나섰다. 어쩌면 이 선택이 조금, 많이 늦은 거 같았지만.






*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To love is to receive a glimpse of heaven.
- 카렌 선드








/



김지훈과 나의 첫 만남은 한여름의 소나기 오는 노을 질 오후였다. 가출... 아니, 집에서 쫓겨나서 공원에 주저앉아 비를 맞으며 울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처음 봤을 때는 키도 크고, 무서워보이는 인상이라 왠지 모를 서늘함이 나를 감쌌지만 그가 곧이어 한 말로 나는 안심을 했다.



“이런 곳에 있으면 감기 걸려요.”



나긋했고, 왠지 모르게 귀여웠던 말투였다. 형은 울던 나를 달래주고 내가 더이상 갈 곳이 없다고 하자 나를 그의 것으로 보이는 차에 태우고는 어딘가로 나를 데려갔다. 그것이 김지훈과 나의 첫 만남이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이유가 되었다.



형은 초면인 나를 따뜻하고 선하게 대했다. 역시 사람은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속으로만 삼킬 때쯤, 형이 커피를 건네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이가 몇이에요?”

“저... 고등학교 1학년이요.”

“아... 나보다 동생이네,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이미 편하게 했으면서. 라는 말을 차마 꺼내진 않고 작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리고 곧이어 형이 말했다.

“이름은 김지훈, 나이는 스물 넷이고. 직업은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야. 편하게 형이라 불러.”

스물 네살에 회사원...



“... 아, 제 이름은.”

“말 안해도 알고 있어, 희준아.”

“네?”



김지훈이 나의 가슴 쪽을 가리켰고, 나는 깨달았다, 아. 교복에 붙어있는 명찰. 생각해보니 장장 2일간을 공원에서 살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집에 오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사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온 것도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따라온 이유 중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라서. 또 다른 이유는 무언가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외롭고, 사랑과 사람이 필요한 사람.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



며칠 후, 나는 사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집에서 가져오기 위해, 더 이상 가기 싫은 곳으로 향하였다. 굳이 가져오지 않고 그냥 그 곳에서 살면 안 되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더는 발을 들이기 싫은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사실 좋은 곳이었으면 쫓겨나거나 가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관문 앞에 섰다. 묘하게 풍겨오는 술 냄새와 담배 냄새, 그리고 향수의 향기와 적절히 섞인 피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발장 옆에는 버리지 않은 소주병들이 줄줄이 있었고, 그 옆에는 엉망으로 된 담뱃곽들이 가득했다. 고개를 흔드며 조심스레 물건들을 챙겼다. 나가는 김에 소주병들과 담뱃곽들을 정리할까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관두었다. 이 곳은 수사중인, 출입 불가 구역이고, 정리해봤자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 같은 건 없었다.



언제 온 건지 김지훈이 자기 차를 가지고 집 앞으로 왔다. 무겁다며 이리 주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사실 무거운 건 하나도 없었다. 전에 집에서 쓰던 물건들은 정상적인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 금전적 부분은 그냥 상관 않기로 했다. 첫 날에 금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자 그런 건 상관 없다고 했던 형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 나도 김지훈을 믿었고 김지훈도 나를 믿었다고 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러기에 나는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가져왔다. 사실 그것도 많다고 생각할 정도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시내에 들렸다.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챙겼다고 해도, 상태가 나빠 집에서 못 챙겨온 것들을 대신할 것들이 필요했다. 먹을 것도 샀다. 먹을 걸 이렇게 많이 사 본 적은 처음이었다. 예전 집에 살던 기준으로 족히 세 달 치는 되어 보였다. 다시 한 번 돈의 중요성과 사람은 사는 동안 풍족해야 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

오늘 하루 피곤했다. 하며 중얼거리곤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 순간 김지훈이 같이 옆에 눕고는 나에게 물었다. 근데 저, 희준아.



“네?”

“너 학교는 안 다녀?”



아, 맞다. 학교 가긴 가야 하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가기 싫은 곳은 아니었다, 적어도 예전에 살던 집보다는. 그렇지만 가기에는 마음 한 쪽이 쓰라려서 차마 기억에서 버려버리고싶었는데.



“학교는 뭐... 가야겠죠?”

“아니 뭐, 너가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고 난 상관없어. 불편하면 굳이 갈 필요는 없잖아?”



다정하고 착한 사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



“그냥 갈게요. 뭐, 요즘 친구들도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한테는 괜히 더 오기가 더 생기는 법이다.


말뽀햄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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